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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8. 26.

등대와 등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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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류키아

멸망할 세계

류연우, 스키아 덴트로

햄쭈, 하엽티

순간마다 들리는 비명이 세상을 가득 메운다. 예견된 끝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기 쉬웠고, 그의 여파는 참으로 대단했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법은 서서히 무너져갔고, 질서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사라졌다. 손을 쓸 수단이 없으니 저 하늘의 높으신 분들은 끈을 놓은 채 방관자로서 탑 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정의로운 사람들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지키자며 힘을 썼지만, 모든 것이 저물어져 가는 그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라져만 갔다.

 

세계가 멸망하기 3달 전.

 

세계 각국은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썼지만 한 달 전 시점에서 포기를 선언하였다. 과학의 기술이 더 발전하지 않은 탓인가, 혹은 무슨 방법을 쓰든지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진실은 인제야 소용없는 일.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들도 날이 다가오자 하나둘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본인이 하던 일은 모두 던지고 방탕한 인생을 살 거라는 사람이 이 인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제한이 없어진 사회에 놓인 사람들은 원초적인 본능에 이끌렸다.

 

그가 지내고 있는 나라 또한 그러했다. 좋지 않은 통계들은 자랑스럽게도 최상위에 자리 잡던 그 나라도 별다른 점이 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인생이라면 지금 죽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어떤 이들은 불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대며 점점 썩어가는 세상이 되어갔다. 한강의 물은 점점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럴 거면 살아가는 게 의미 없지 않겠냐는 이 상황들은 사회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기 쉬운 법이었다. 사회를 살아가며 억눌린 욕구는 이참에 제어될 줄 몰랐으며 사회는 그걸 막을 여유도, 의미도 사라진 채 그저 고요하게 썩어들어가는 중이다.

 

그런데도 그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이미 혼돈에 물든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본다면, 이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답할 뿐인 그런 미련한 사람들.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 국내 사례로는 볼 수 없던 많은 일이 속출한다.

 

사실상 세상이 멸망한다면 누군가가 죽는 원인을 밝히는 건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그 소식이 들려온 이후 하얀 가운과 검은 양복을 매번 바꿔 입는다. 어느 땐 누군가를 돕기 위한 메스를, 또 어느 땐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떠난 이유를 듣기 위한 메스를.

 

“부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또 한 명의 시신에 대해 원인을 밝혀낸다. 서류작업은 필요 없다고, 무슨 소용이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밝혀낸다. 가지각색의 사망 원인이 있지만 그의 계기는 대부분 본인이 원해서 생을 마감한 것.

 

상부층에선 어차피 곧 멸망하는 세계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폐지한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사망의 원인은 생각보다도 더 다양했으며, 특히나 반대를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자살을 택한 가족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범죄에 연루된 사체도 다양하게 존재했으며, 떠나가기 전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는 이들도 참으로 많았다. 그는 그런 이유에서 계속해서 메스를 들었다.

 

 

메스를 드는 빈도수가 서서히 줄어들 때쯤, 하늘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들에게 진실 규명을 위해 찾아오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쏟기보단 이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종말의 순간은 그 뒤 예상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눈을 감으면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들이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죽은 사람들의 원인을 규명하는 쓸데없는 짓을 했더라도 그 이유를 듣고 마지막 순간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주었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닷가의 등대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시간이 멈춰있던 그 순간에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가. 그는 마지막이 다가온 그 순간에 스쳐 지나간 하나의 기억을 떠올린다. 비록 그는 타인의 죽음을 규명하고 파헤치는 직업이었지만, 시간의 무한함에 갇힌 그 순간은 죽음 따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순간에 만난 인연은 그에게 있어 강렬한 기억의 상징이었고, 최후의 순간에 기억해낼 법한 소중한 이야기였다.

 

생명에 관해 죽음만 밝힐 줄 알았던 그가 마주한 한 사람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던 것. 생명의 소중함은 익히 잘 알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를 알았던 그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제 목숨 바쳐 살아가려고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스키아. 너는 왜 네 동생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그걸 말해야 아나요? 해야 하는 일에 이유를 덧대고 싶지 않아요. 연우.”

 

그 사람이 그렇게 해주었던 말들을 붉은 하늘 아래에서 문득 떠올려본다. 서로의 가치관은 다르지만 만일 하고 싶은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네 모습은 어떠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이라면 지금 네 모습은 어떠하냐고. 모두가 죽어가는 입장에서 넌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그는 그 사실이 궁금했다.

 

틈새에서 공허함을 메꿔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하고 그냥 보낸 것만 같아 마음이 쓰이던 그는 그 사람과 처음 만났던 그 자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죽음을 규명하던 그는 메스를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던 사실을 향해 걸어간다. 수많은 자살 앞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사람들처럼 그도 저만의 이유를 찾아 마지막을 장식한다.

 

 

만나게 된다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비록 지금 우리의 운명은 마침표를 찍지만 네가 그 순간에 했던 일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니야. 기억하는 누군가라도 있으면 좋은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내가 봐온 것들은 모두 지나간 것들에 이유를 밝혀내는 거지만, 네가 소중한 것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것도 저마다의 기억하는 방법일 테니까.

나만의 세상을 확장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수용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꽤 중요해. 그 중심에 네가 있었어. 등대의 의의는 누군가가 찾아올 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야. 목적이 없다면 만들어지지 않는 물건일 테니까.

그러니까, 이 세계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만 너를 만날 수 있다면, …

 

 

 

. ... .

 

 

 

그렇게 둘은 마주한다.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은 순간의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었던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하늘이 붉어지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설 자리가 하나둘 줄어간다. 최후의 순간에 마주하며 기억하고 싶은 건 바로 너였다고 이야기하듯 서로의 눈동자에 모습과 기억을 담는다.

 

추억의 마지막에 자리하는 건 너였기에 다행이라고,

 

정말 하고 싶었던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슬픈 앞날은 잠시 접어두자.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널 봐서 다행이라는 이 점 하나만 마음속에 품고 저물어간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

 

 

 

. ... .

 

 

 

그렇게 둘은 마주한다.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은 순간의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싶었던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하늘이 붉어지고, 사람이 사람으로써 설 자리가 하나 둘 줄어간다. 최후의 순간에 마주하며 기억하고 싶은건 바로 너였다고 이야기 하듯 서로의 눈동자에 모습과 기억을 담는다.

 

추억의 마지막에 자리하는건 너였기에 다행이라고,

 

정말 하고싶었던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슬픈 앞 날은 잠시 접어두자.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널 봐서 다행이라는 이 점 하나만 마음 속에 품고 저물어간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

 

그 운명 같은 두 번째 만남 사이로 짧은 연락이 도착했다.

 

[누나, 잘 만났어?]

 

두 사람의 만남 앞에 미루어질 연락. 하지만 그 물음에 답할 말을,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은 떠올리고 있었다.

 

오직 이 만남을 위해 이곳에 돌아온 사람이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남겨둔 것이 없음에도, 버리지 못해 건네고 싶은 한마디가 미련이 되어.

 

이 작은 땅을 향해 날던 비행기에서 본 것은, 자신의 마음처럼 혼란스러워 보이는 하늘이었다. 세계의 마지막이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아마도 아주 짧은 시간. 그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목지는 이곳이었다. 이 만남이, 그의 마지막 정류장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마지막 바람이었다.

 

*ㅡ 단 한 번,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내가 아닌 누나를 위해서 살아봐.*

 

나 자신을 위한 삶.

 

사랑하는 이만을 위해 모든 생을 바쳐온 삶이었다. 그의 삶 속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그림자*σκιά*로 살아가며 그 앞에 빛을 비춰주었을 뿐.

 

그렇기에 처음으로 마주한 욕망은 차츰 형태를 찾아갔다.

 

자그마한 미련이었다.

 

또 소원이었다.

 

바람이었다.

 

다정한 빛을 한 사람이었다.

 

우습게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욕망이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세계가 멸망하는 날까지 제 아픈 손가락과 함께 있을 생각이었다. 마지막 여행을, 마지막 추억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미소를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원 없이 여행을 다녔다. 두려움을 기쁨 속에 감추며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느꼈다.

 

저도 알지 못했던 미련을 떨치고 그렇게 한국을 떠나왔건만, 제 욕망은 다시 한국을 가리켰다. 오랜 시간 자신을 마주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은 그리도 선명했다.

 

귓가에 그날의 뉴스가 들려오는 듯했다. 평화로운 한때 들려온 평화롭지 못한 소식. 거리를 나서면 대부분 헛소리로 치부하는 목소리만 들렸던 날. 그 누구도 세계의 멸망을 믿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멸망까지 90일.

 

그리고 지금은 멸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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