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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12. 24.

Now
1911. 02. 29.
가진 자의 여유라고 생각하여도, 지금 걷는 그 길이 선한 길이라면.

25
엘더플라워
멸망한 세계
레이너드 제러마이어, 에브라임 엘론
햄쭈, 친애하는 나의 달님
××××년 ××월.
[소행성 2000NW 이상 궤도 변화 관찰]
2000년도에 발견된 소행성 2000NW의 궤도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현상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전 세계에 설립되어있는 우주 관련 기구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궤도 이상으로 계산된 결괏값에 의하면 약 3년 뒤인 xxxx년 ××월 xx일 지구를 충돌하여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관측 결과를 보고 받았습니다.
해당 기관들은 소행성 충돌을 대비해 많은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년 ××월
[세계정부의 대책, 대체 어디로.]
약 2년 전 발표된 소행성 2000NW의 충돌이 1년 뒤로 다가온 시점이지만 진행된 계획이 전무후무하다는 소식입니다. 해당 사실이 밝혀진 직후 전 세계는 불안에 휩싸여 오갈 곳 없는 시민들에게서 혼란만 가중 될 뿐 나아진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선 지금부터라도 모든 계획 착수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그 사실 역시 믿지 않고 각지에서 폭동만 일어날 뿐입니다.
××××년 ××월
[인류의 운명, 어디에.]
3년 전 소행성 충돌이 발표된 하루 전날이지만 1년전 세계정부의 약속에 무색하게도 인류는 그 마지막을 맞이하기까지 하루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하로 재난대피 행동 요령이 이어집니다.
실내에 있을 경우
- 건물 내 지하 대피소가 있는 경우 잔해물이 지상까지 추락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피장소로 이동한다.
- 건물 내 지하대피소가 없는 경우 튼튼한 벽 또는 기둥 뒤로 대피하거나 머리를 보호 할 수 있는 곳으로 대피한다.
대피 후 행동요령
- 강한 폭팔력에 대비해 창문이나 출입구 반대 방향으로 엎드린다.
- 재난방송을 청취하고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
추락 종료 후 행동요령
- 2차 피해를 대비하고 잔해물은 건들지 않는다.
실외에 있을 경우
- 대피 가능 장소가 있을 경우 그 곳으로 이동하되, 추락물에 유의하여 대피한다.
- 가능 장소가 없는 경우 소지하고 있는 물품으로 머리를 최대한 보호한다.
각 지역별 연락처 안내 : XXX-XXXX-XXXX
인근 지역 지하 벙커 안내 : XXX-XXXX-XXXX
...
곳곳에 타들어 가는 흔적, 지워지지 않은 상처들. 그들이 무언가 계획할 거라는 굳은 믿음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사실을 조롱하듯 예고된 소행성은 지구를 강타했다. 이 일로 세계정부는 한 번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기관이 들어섰지만 깊은 불신이 쌓인 사람들은 본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바쁘다.
막지 못한 그날의 충격은 지구의 자전축을 바꿀 정도로 크나큰 흉터로 남았다. 갑작스레 변한 기후는 살아있는 생물들은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천천히 쓰러져갔다. 한 번의 큰 진동은 지구의 대륙을 바꾸기엔 충분했으며, 기존에 쓰여있던 지도는 재정비해야 할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회복되지 않은 지구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은 존재하며, 쌓여있던 기술들 덕에 여러 방면으로 복구되는 중이지만 이 지구는 더 이상 누군가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어느 두 사람의 이야기.
### 친애하는 의사 선생님께.
> 정성스레 적힌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지울 수 없는 자국이 구석에 보이지만 빳빳한 종이 재질이 그의 고민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자로 잰 듯 깔끔한 글씨체가 돋보이며, 느리고 힘있게 눌러쓴 자국이 눈에 띈다.
>
익숙치 않은 환경이 지속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지만, 펜을 꺼내어 몇 자 적어봅니다. 사람은 늘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채 본인의 이익만을 챙겨갈 뿐이니 우리가 살아가는 중인 이 지구는 어쩌면 예견된 미래라고 볼 수 있겠지요.
어느덧 그날로부터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잡음이 대부분인 라디오에서는 지구의 변화에 대한 주제가 주로 흘러나옵니다. 이곳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소식을 들으며 하루하루 어찌 살아갈지 토론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그 이전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생활이 펼쳐지고 있군요.
선생님께서는 요즘 어찌 지내고 계시는지요.
최근에 편지를 보낼 방법이 있단 이야기를 이곳의 사람이 말해주더군요. 선생님의 생사를 알 수 있었을 때 제가 어찌나 기뻐했는지 아실까요.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인 만큼 챙겨드릴 수 없어 걱정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편지도 그런 이유에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구석에 먼지가 가득 쌓인 종이로 편지를 보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저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을 테니 무례함을 무릅쓰고 제 소식을 실어 보냅니다.
어느 곳이든 혼란을 잠재우지 못했을 거라 예상합니다. 사람이 비교적 많은 이곳도 그러하니까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현실이라는 점을 자각한 이후 공장 내 많은 물품을 정리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금전적 수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사회가 붕괴하였을 때 화폐의 가치는 저 아래로 흘러가고, 실질적인 물건만이 본래의 가치를 발하는 법이죠. 사업을 하는 자의 시선이다 보니 가치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게 되더군요. 물론 제가 가치를 추구하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근본이지만요.
저는 그 사건 1달 전부터 공장부지를 정리했습니다. 인근 지역은 모두 공장뿐이라 낙하물에 대비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대피 구역이라 칭하면 공장 내부가 제일 적절했습니다. 내부에는 충분한 식량을 구비하여 낙하물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내부에 데리고 들어왔고요. 저는 공장 부지에서 떠나 평소랑 같이 바에서 그날을 맞이했습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인파가 많은 곳에서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이곳의 문을 두드립니다. 사회적 통제 권한이 없다는 것은 곧 무정부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쁜 것에 물들기 마련입니다. 어두운 곳은 더욱 어두워지고, 밝은 곳은 어두움에 잠식되어가겠죠.
아픔을 가진 이들은 제정신이 아닐 수 있는 수단을 갈구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의 술을 원하더군요. 어쩌면 마약 등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전 그런 물건 따위는 다루지 않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싸움과 더러운 인간의 민낯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싸움, 협박, 위협 등…
제가 선생님께 말했었죠. 저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한다고. 물론 이 많은 위험한 상황이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 양상을 띠는 것은 분명합니다. 큰 상처가 생겼는데 어찌 그렇게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했다고 하면 지금 지구는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전의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저 자신을 운이 좋은 사내라고 하였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선의에서 선의를 낳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어두운 부분은 한없이 어두워지지만 밝아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에요. 문득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다시 제 공장이 있던 자리를 다시 한번 찾아갔었습니다. 그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제가 두고 간 여러 물건으로 잘 지내고 있더군요.
그곳은 어떻습니까? 많이 힘드시진 않으신지요. 지금도 길을 걸을 때마다 수많은 유리 파편이 밟히고 있습니다. 부서진 여러 흔적은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법이고, 우리의 생활은 그 이전과 상당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죠. 특히나 선생님께선 직업이 의사이시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업자는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선 무지합니다. 하지만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법이겠죠.
수많은 부상자가 아직도 도시에서 아픔을 호소합니다. 그들의 선배격으로 먼저 경험한 제가 발 나서서 도와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희가 사업으로 구상한 기획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선생님 덕분에 조금 더 따듯한 온기를 찾아다닐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해드렸지만, 선생님이 닿는 그 길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이야기 해주세요. 비록 제가 가진 재력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무엇 하나 권력 같은 건 쥐고 있지 않지만 제 강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분명 아무것도 없는 흙길 위에서 싹을 틔워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끝맺으며. 엘론에게, 당신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그럼, 그곳에서 선생님만의 선한 영향력이 이곳까지 닿길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상황이 진정된다면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친애하는 당신의 파트너,
레이너드 제러마이어.
편지봉투라고 부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물건. 쓰레기 봉투에 어찌든 넣은 듯한 물건들이 당신에게 전달된다. 안에 있는 것은 편지라고 부르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지저분한 종이들, 흙이 묻어있는 것도, 찢어진 것도 다양하다. 성한 것이 없다. 마치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처럼.
안 쪽의 종이들과 녹음기에는 넘버링이 되어 있다. 이 순서대로 읽으라는 양 적혀있는 투박한 글자들이다. 글자를 쓰는 사람이 투박한 글자를 쓴 것이 아니다. 글자를 쓴 물건들이 글자를 투박하게 한 것이다. 그 글자는 검댕으로 쓰인 것이며, 나오지 않는 펜으로 억지로 쓰인 것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져버리고 있는 행성과도 같이 포기하지 않은 듯한 그런 글자.
힘겹게 힘을 준 글자들이 이어진다. 원래의 글자는 아니라는 양, 잘 쓰일 때는 단정하나, 나오지 않을 땐 힘을 준 게 보인다. 꾹꾹 누른 것이 절박해 보이기도 하면서도, 한 없이, 한 없이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첫 번째 장은 강하게 쓰인 듯한 문장이 적혀 있다. 급하게 쓰인 듯 하면서도,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들이 적힌 양. 나오지도 않는 매직을 몇 번이도 그어 문장으로 만든 편지.
[건강하십니까. 무사하십니까. 그 날 이후로 아픈 곳은 없으십니까. 살아 계십니까. 부디.]
두 번째 장은 그와는 조금은 대조되게 차분하게 적힌 문장이 적혀 있다. 아래로는 응급처치에 관련된 내용이 작성되어 있다. 과다출혈 시의 대처 방법, 골절 시의 대처 방법 같은 것들이다. 잘 그려지지 못 한 그림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강조하려는 양 그려진 붉은 색 원은 크레파스로 그린 지 자꾸만 가루가 떨어진다. 편지를 자세히 보면 그를 쓴 물건이 다르다. 네임 펜, 연필, 잉크, 크레파스 등등 종류는 다양하다. 한 가지로 통일할 수 없는 상황인 양.
세 번째 장은 서툴게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 곳에도 붉은 색의 원들이 그려져 있으며, 거기에는 쉘터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종이에는 붉은 색의 물이 튄 지 조금은 엉망이다. 그 위에 검정색 크레파스로 엑스자가 쳐진 곳도 존재한다. 아래에는 "위험하니 가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녹음기에는 4라는 숫자가 선명히 적혀 있다. 분필로 적은 양, 흰색의 글자가 녹음기에 그어져 있다. 그를 재생하면, 고장나기 직전의 음질이 퍽이나도 좋지 않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 녹음은 xxxx년 xx월 xx일 레이너드 제러마이어씨에게 남기는 편지입니다. 출처인은 에브라임 엘론. 만일 당사자가 아닌 다른 분이 이 녹음을 듣게 되신다면, 파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감돌고 목소리는 이어진다.
"선생님께, 편지를 받게 되어 다행입니다. 많은 가량 안심했습니다. 선생님처럼 길게 편지로 남기지 못 한 점, 죄송합니다. 여기에서는 종이나 필기구조차도 꽤 중요시 여겨지고 있어 그를 사용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녹음의 형태로 남기게 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곳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많은 가량의 싸움도, 약탈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버틸 수 있는 기간의 끝이 오고 있음을 이를 통해 깨닫습니다.
사실 이 녹음을 선생님께 남기는 것 또한 사치로 느껴집니다. 이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추위로, 누군가는 굶주림으로, 누군가는 출혈로, 누군가는 감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무언가의 슬픔이 있고, 무언가의 그리움이 있을텐데도 그들을 뒤로 하고 선생님께 제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다른 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서글프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저는 참으로 여러 면에서 이 상황에서 유리함과 사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의사이기에, 제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을 알기 때문에..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서도, 선생님께 이어 소식을 전하자면, 선생님과 같이 이 곳에서도 대피 구역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를 독점하기 위해 사람들이 급습을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서도 우린 버텨내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병원 또한, 그런 대피 구역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이 이 병원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수혈할 수 있는 피도, 심지어 그 고통을 덜 수 있는 진통제와, 상처를 압박할 수 있는 붕대조차 부족하여 저희의 대다수는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우는 사람도 있었으며, 절망하며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어머니를 보며 울며 웃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목소리에 떨림이 서린다.
"무력감을 느낍니다."
숨을 크게 삼키는 소리, 그 너머로, 병원인 듯 비명 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사람을 살아가는 세상은 선의가 선의를 낳는다고 했습니다만. 어두운 부분에서도 밝아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지만, 저는 그리 심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이 두렵습니다.
제가 드는 메스가 더러움을 알면서도 들어야하는 상황이 괴롭고, 주사기의 바늘을 교체하지 못 해 감염이 우려되면서도 그를 써야하는 상황을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진통제를 가져오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간 인원들이 다른 이들로 인해 사고를 당해 돌아오지 못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절망을 삼키는 일은 힘겹습니다. 그를 느낄 때마다 저의 약함을 느끼고, 그리고,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곱씹고야 맙니다.
우습게도 저는 선생님의 편지를 보자마자 울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서야, 조금은 느낀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이 지쳐있었노라고. 처음에 말했어야 할 말을 이제야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살아있으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선생님의 편지가 조금은 저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다행이에요. 정말.."
공기가 떨리는 듯한 잡음이 이어진다. 말소리를 대신하여, 숨을 몇 번이고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을 삼키는 듯한 소리, 고통을 삼키는 듯한 호흡. 말의 공백, 숨소리. 살아 있는 사람의 떨림.
이어 목이 메인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목을 가다듬는 소리와 함께 가라앉는 목소리가 흐른다.
"선생님께서, 하신 일들 사이에서 만약에란 말들을 찾습니다. 만약, 우리 지역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런 공간이 있었노라면 죽는 사람이 덜 하지 않았을까 하고. 이 곳은 참으로 가난했던 사람이 많아, 더욱 서로를 경계하고 자신이 가진 걸 지키려고 하곤 합니다. 만일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이가 있었노라면, 집이 타거나 그런 일은 없었겠지요. .. 그런만큼, 선생님이 그 곳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이 그 곳에 있었기에 누군가가 살 수 있었음을 느낍니다. 선생님이, 이런 상황임에도 선생님임에 대해 기뻐하고야 맙니다.
그렇기에 이 녹음을 통하여 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말은, 선생님이 살아있으시길 바란다는 말입니다. 이 이후에는 더 많은 일들이, 더 많은 힘든 상황들이 펼쳐지리라고 어렴풋 느끼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이렇게 편지를 나누지 못 할 정도로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 찰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이 가능하다면 계속,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길 바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선생님이 무사할 수 있으며 부디 안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이 있다는 것으로 제가.. 제가 절망하지 않고, 계속 버텨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흐릿하게 그 말을 끝으로 "이리도 약한 사람이라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흩어진다. 고해하는 듯한 그 말 사이로, 아이의 울음이 끼고야 만다.
"그런 연유로, 저에 대한 안부는 녹음에, 계속 보관하고 확인해야 하는 내용들은 종이에 작성해 보내드렸습니다. 이 모든 게,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에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러마이어씨에게. 만일, 된다면.. 정말로 된다면, 선생님과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이 모든 일이 아무리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라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터이니. 선생님께서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며, 있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언젠가처럼..“
말이 끊긴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녹음소리에 섞인다.
"그 날처럼 선생님과 무어라도 편안히 마실 수 있는 날을 그리워하고, 고대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 쪽에도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이 쪽은 크게 상황이 바뀌고 있는 터라, 선생님이 연락을 해주셔도 받지 못 할 수 있으나.. 연락이 닿을 수만 있다면,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가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꼭, 건강하십시오."
독백하듯이 느릿한 목소리가 흐른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많은 것이 담긴 몇 마디.
"친애하는 당신의 파트너가. 에브라임 엘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