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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3. 04. 15.

겨울바다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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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stuary

멸망할 세계

영하해, 강수선

다요, 아메

“바다 보러 갈까, 수선아?”

 

 흘러가던 구름과 별을 보던 3월의 밤, 벚꽃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눈꽃을 담은 파란 눈동자가 오지 않는 여름 끝자락의 하늘을 닮아 있었다.

 

2253년 4월 15일

 

무수한 책들 사이에서, 이 노트를 발견했을 누군가를 위해 기록을 남겨봅니다.

 

2247년, 더이상 이상기후에도 아무런 반응하지 않는 인류에 지구는 푸른색으로 빛나길 포기했고, 지구가 새롭게 선택한 색은 흰색이었습니다.

 

 

 처음, 눈이 내렸을 땐 모두 신기해 했습니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해가 뜬 하늘과 변화 없는 기온에 내리는 눈은 여름만 지속되는 곳에서도 겨울만이 있는 곳에서도 계속 내렸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뭄이 지속되던 곳에서는 땅에 스며들어 물이 되고, 추운 날씨의 곳에서는 기온을 낮추며 얼음이 되었습니다.

 

종교단체는 신이 내려준 기적이라고 이야기하고, 과학자들은 이상기후로 지구에 알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말했습니다. 미디어에는 새로운 멸망설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 가요? 금방 이런 날씨에도 적응한 사람들은 이슈들을 잊고 조금 불편하지만, 변함없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간간히 물 밑에서 멸망설이 오르곤 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대, 눈이 얼어 미끄러우니 조심하게.”

 

“응, 수선이 너도 조심하고.”

 

탕탕.

 

워커로 두드린 바닥의 울림에 수선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단단하게 언 눈에 수선은 하해를 향해 손을 뻗어 잡았다. 가죽장갑 사이로 언뜻 느껴지는 온기를 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입가를 가린 마스크를 내리며 바라본 절벽의 아래는 얼어붙은 바다였다. 그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이내 햇살이 내려앉았다. 완전히 얼어붙은 듯 바다 위 햇살이 부서지며 진주처럼 반짝였다.

 

 

「  

   [ 오늘의 날씨입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이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가 저물고 난 후 눈이 얼어 미끄러워 밤중 외출은 삼가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그렇게 사람들이 눈이 내리는 나날에 익숙해지며, 멸망이 다가왔지만, 인류는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처음에는 도로에 겨우 깔릴 수준의 눈은 점점 양이 늘어났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그렇게 1년. 발목을 덮고, 종아리를 넘게 쌓이던 눈은 이내 턱이 낮은 지대를 덮어 버릴 만큼 오기 시작했습니다.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였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지고, 눈의 무게에 내려앉은 건물, 기차가 탈선하고, 바다가 얼며,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누군가는 얼어서 죽게 된 그때서야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재난방송과 행동요령만 흘러나왔고, 밖에는 신을 섬기는 이들이 나와 판을 쳤습니다.

국가가 마비되고, 생활기반을 마련하던 모든 것들이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낮임에도 구름이 끼던 어느 날.

 

 눈이 내렸습니다. 끊임없이…

재앙이란 것은 그렇게 소리도 없이 인류를 삼켰습니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구름에 흐린 날씨에 모닥불을 피우고, 눈보라가 그친 날이면 밖으로 나가 눈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가전제품과 필요 없는 가구로 만든 바리케이드를 점검했습니다.

 

 낮과 밤을 구분하여, 날짜를 세고 달력에 그 날 할 일을 적으며 드물게 구름이 흩어지고 해가 뜬 날은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길 위의 눈을 치우고, 흔적을 남겨 살아있는 누군가와 만나길 바라면서요.

 

 

“수선아, 그쪽은 어때?”

 

 얼어붙은 건물 안 바람을 피해 들어온 사무실 한 귀퉁이에 남은 것이 얼마 없는 서랍을 뒤지던 하해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공간은 개인 사무실로 쓰는 공간이었다. 꽤 넓은 공간에 탁상과 소파, 주변에 비치된 식물들은 추위의 여파로 시들어져 있었다. 구석에 놓인 냉장고를 마지막으로 열어본 하해는 완전히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쭉 폈다. 한동안 웅크려 있었던 몸은 추위와 함께 굳은 느낌이 들어 이리저리 몸을 풀고 하해는 수선을 불렀다.

 

 턱을 괴고 드문드문 빈 선반 위 상패를 보던 수선은 하해의 부름에 턱을 괴고 위로 보고 있던 고개를 내린 그대로 하해와 시선이 마주친 수선은 눈을 가볍게 끔뻑였다.

 하해의 물음에 어찌 설명할지 생각하는 듯하던 수선은 사무실 한 구석에 있던 무언가를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이내 발끝으로 무언가 구석으로 밀곤 하해에게 다가가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탁상 옆에서 비스킷 같은 걸 조금 찾았네. 그대는?”

 

“음-...”

 

수선의 손에 자리한 비스킷을 보며 잘 됐다는 표정을 짓던 하해는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생수병을 든 손을 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생수다. 그지? 가방에 찾은 물건들을 넣고 지도를 꺼낸 하해는 듬성듬성 그려진 엑스 표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얻은 게 얼마 없네.”

 

 처음 바닷가 근처 도시에 도착하여 높은 절벽에서 봤던 도시는 계속 내린 눈의 여파로 대부분 건물들이 무게로 내려 앉아있었고, 혹시나 싶어 도시에 도착해 비집고 들어간 안은 눈과 건물 잔재로 가득했다.

 눈이 충분히 얼어붙었지만 무너질 수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 건물만 한 두 곳이 아니었기에 작은 지도는 이미 붉은 펜으로 X자가 가득했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니까 이동할까? 근처에 멀쩡한 건물은 여기가 다니까.”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은 하해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들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이런 사무실은 버티기 어려운 편이니. 쉘터에서 나올 때 보온용품을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창문이 없는 바람이 안 새는 곳이 좋겠지.”

 

“응. 한 3일 정도 나와있겠다고 했으니까, 장소를 잡고 왔다 갔다 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 오면서 보니까 무너진 건물이 많아.”

 

 조곤조곤 오가는 목소리가 빈 사무실에서 잔잔히 울렸다. 빛이 들지 않아 낮이지만 어두운 사무실에 괜히 서늘해 진 기분에 하해는 어깨를 문지르자 방한용 외투 아래로 느껴지는 바람막이를 한 번 더 문질렀다.

 좋아, 너무 늦으면 다들 걱정할 거야. 무사히 빠르게 귀환하는 걸 목표로 하자. 작게 나마 퍼지는 온기에 움츠렸던 몸을 피며 하해는 지도를 접었다.

 

“그럼, 이동하도록 하자.”

 

 가방을 짊어지고 나온 건물 밖은 여전히 고요했다. 

눈이 세상을 뒤덮고, 내린 눈에 무너진 건물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흉흉하게 울려 퍼지는 도시는 영화 속에서 나오는 커다란 묘지와 비슷했다. 바람이 부는 도시를 누구도 남지 않아 외롭기 그지없었다. 그런 도시를 눈에 담던 하해는 걸음을 내딛었다. 

 

 뽀득, 그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해진 발걸음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에 근처 편의점이나 큰 마트를 기웃거리다 보면 금방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간간히 다른 사람이 다녀간 흔적은 보였습니다. 음식코너 선반 위에 둔 식량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함께 둔 쪽지만은 늘 가져갔습니다.

 답장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누군가 가져갔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시간만 잘 맞춘다면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확신 말입니다.

 

 오랜만에 비친 햇살에 눈이 녹아내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물은 중앙이 푹 꺼져 있었다. 눈의 무게로 완전히 무너진 건물은 길을 막고 있어 위험해 보이는 앞에 수선과 하해는 걸음을 멈췄다.

 

“음, 이래서야 여기로는 못 가겠네. 돌아서 가기에는 너무 멀 거 같은데.”

 

 수선아, 지도 좀 꺼내 줄래? 막힌 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야기하며, 기다리자 곱게 접힌 종이가 하해의 시야에 살짝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지도를 쥐고 있는 다부지고 단정한 손에 하해는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받았다. 최종 목적지인 도시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손가락으로 찍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던 하해는 고개를 기울이다 길 앞을 보다 작게 소리를 내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곳은 도서관인데… 제일 가까운 길이 여기인데…”

 

 여기서 돌아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 못 할 거 같은데. 작게 중얼거리는 하해의 모습을 보던 수선은 이내 가늘게 눈을 떴다. 집중하는 듯 고개를 들고 한 구석을 바라보던 수선은 이내 고민하고 있던 하해의 손을 잡았다. 길을 찾기 위해 집중하던 의식을 뚫고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다른 감각에 몸을 작게 튀게 반응하던 하해는 저를 보며 미소를 짓는 수선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쪽에 길이 있네.”

 

 그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듯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하해는 처음 수선을 만난 날을 회상했다.

 

 그날도 이렇게 눈이 멈추고, 오랜만에 내린 햇살에 녹은 눈이 다시금 바람에 얼어 미끄러워진 길 위에 쓰러져 있던 수선을 데려온 날. 워커에 눈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하얀 입김이 흩어지는 끝, 시선에 닿은 하얀 손 하나.

 

「       

      그날은 드물게 먹구름까지 완전히 걷힌 날이었습니다.  멀리 물러난 먹구름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기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두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게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깨끗한 하늘에 추위를 잊고 평소에 다니던 곳보다 조금 더 나왔던 늘 지나다니던 길의 끝너머에 눈 위로 튀어나온 손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집으로 온지 모르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지 않은 하얀 손을 보고 정신없이 눈 아래를 파자, 보이는 검은색 가방과 푸른빛이 도는 녹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감고 잠들듯 편안한 얼굴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댔습니다. 장갑을 벗어 바람으로 차가워져 가는 손끝에 희미하게 닿는 따뜻한 숨결과 오르락내리락하는 등을 보며 서둘러 쓰러진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완전히 힘이 빠진 사람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무거운 백 팩의 무게까지. 

그땐 어떤 힘이 나왔는지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들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를 데리고 집에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바람을 막고 불을 피워 옆에 눕히고 이불과 담요를 꺼내 와 최대한 따뜻하게 했습니다. 뜨거운 열에 이마에 땀이 맺힐 때쯤, 추위에 동면하던 동물이 깨어나듯 미동 없이 누워있던 사람에게서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이쪽이네, 그대.”

 

 수선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길을 찾아내는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고, 걸어가는 길에는 눈을 제외하곤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마치 여러 번 이곳을 걸어 본 듯한 수선의 모습에 걸음을 옮기던 하해는 오랜만에 느끼는 이질감에 고개를 기울이다 이내 떠오르는 옛 생활에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까 옛날에 우리 둘이 있을 때 생각나네.”

 

 기억나? 작게 웃으며 붙이는 하해의 말에 어떤 때인지 예상했는지 수선 또한 입꼬리에 미소를 물었다.

 

“그대의 집에서 깨어난 이후에 이야기하는 거 맞는 가? 그때도 꽤 이랬지.”

 

“익숙하게 움직이고, 척척 찾아서, 딱딱 고치고 말이야.”

 

 그래도 그때 너를 데리고 와서 다행이었어. 장난스럽게 덧붙이는 말에 수선은 그 말에 담긴 옅은 안도감을 느끼며 덧붙였다. 나도, 자네를 만나서 다행이었네. 

 

 

「       

      일어난 사람은 자신을 소개할 정신도 없이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추위에 몸을 녹이고, 옆에서 간호하며 시간을 보던 중 이틀째 되던 저녁날에 눈을 떴습니다.

 

 자신을 S라고 소개한 그는 이틀 전 눈 속에서 자신을 데리고 와 깨어날 때까지 간호했다는 제 말에 경계심을 완전히 풀었습니다. 쾌활하지만 정중한 말투, 슬쩍슬쩍 가늘게 뜨는 눈 사이로 보이는 싱그러운 초록색의 눈동자, 그리고 빠른 몸놀림. S의 모습과 말투에 저도 서서히 경계심을 풀었습니다. 동갑이란 사실까지 알았을 때 우리는 몇 년이나 함께한 사람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그 사실에 즐거워했습니다.

 그 뒤 가방에서 가지고 다니던 식량과 장비를 보여주며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에 평소 다니던 길보다 더 멀리 나왔으나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에 길을 잃었고, 계속 걷다 쓰러진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그는 무언가 기억난 듯 가방을 뒤적였습니다. 이후 꺼내든 건 익숙한 쪽지였습니다.

 

그래요, 제가 계속 놔두었던 그 쪽지 말입니다.

 

 쪽지를 보고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고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S의 말에 기뻤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행동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야.

 

 그 뒤, 집의 구조와 쓸 수 있는 방을 안내하고 짐을 푸는 S를 도왔습니다. 가방의 짐을 풀고, 방 안에 정리하는 모습이나 집구조나 물건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S가 익숙하게 물건을 찾아 가져다 주는 모습에 의아하긴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S가 물건 수리나 무언가를 잘 만드는 모습에 손재주와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한동안 지내던 집 근처에서 더이상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지자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지도도 그리고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오랫동안 함께 다니기도 했고, 하루 이틀 뒤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헤어지는게 아쉬웠지만, 목적지가 달랐거나,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떠나기 전 서로 향하는 곳을 지도에 표시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된 여정에서 정착 했을 때 주변에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함께 걸어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금방 풀어졌고, 모두 협력하여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필 줄 아는 따뜻한 그룹임에 이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텅 빈 도시에 두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어지던 대화는 눈 앞에 도서관이 보이자 멈췄다. 2층 높이의 햇빛이 내리는 도서관 건물 위에는 작게 나마 태양광 패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두사람은 얼어버린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갔다.

 도서관 입구, 대리석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떨치며 둘러본 내부는 아무도 오지 않은 듯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입구를 지나 보이는, 경비실과 그 뒤로 보이는 복도에 배치된 지도를 보며 두사람은 잠시 멈춰 섰다.

 

“1층은 영상실이랑 사무실이 있나 보네. 2층은 독서실이랑 인가 봐.” 

 

 1층은 문학과 비문학을 2층은 다른 분류의 책들을 나눠 둔 도서관 지도를 보며 하해는 턱을 문질렀다.

 

“그럼, 내가 1층을 보겠네. 적당히 살펴보고 잠자기 좋은 곳도 함께 찾아보고 있겠네.”

 

고민 중이던 하해의 옆에서 드물게 수선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평소라면 자신과 함께 수색을 하거나 혹은 먼 2층을 올라가겠다고 할 수선이 1층을 살펴보겠단 이야기에 하해는 의아해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2층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1층 수색이 끝나면 와주렴.”

 

 수선이 1층의 로비로 들어가는 것을 본 하해는 계단을 올랐다. 

 빈 도서관의 계단을 오르며 울리는 발걸음 소리는 이내, 전 커튼이 쳐진 창 앞에서 멈춰 서 실내를 어둡게 하는 커튼을 거두었다. 커튼이 거둬진 공간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너머 하늘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던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구경하던 하해는 천천히 책장 사이로 들어가며 책들을 보았다.  

 경제, 법학 외로 번호별로 분류되어 책장은 정갈하지만 중간중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책이 꽂혀 있었다. 사서가 당시에 발견하지 못해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책을 보며 하해는 책을 꺼내 들었다. 딱딱한 양장본의 책 표지를 두드리자 톡톡 소리가 나자 미소를 지으며 번호대를 찾아 움직였다.

 

“어디보다… 500번대라…”

 

 분류 번호를 중얼거리며 나아가자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자리에 분류된 500번대 책장이 눈에 들어오자, 책장의 중간쯤 위치한 빈공간에 책을 끼워 넣었다. 완전히 익숙한 느낌의 책장에 한걸음 물러나 전체적으로 책장을 보았다.

 문득, 시선의 끝에 낡은 노트가 하해의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듯 너덜거리는 노트의 표지가 보였다. 아무런 장치도 없는 노트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길한 느낌에 눈을 가볍게 깜박이던 하해는 조심히 떨리는 손을 뻗어 노트를 잡았다.

 곧, 부서질 듯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넘어갔다.

 

 2053년이라고 적힌 노트를 보며 하해는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분명 이번 년도에 작성된 노트는 말도 되지 않게 너덜거렸다. 몇 년, 혹은 몇 십년 정도로 닳아 바스락 거리는 노트는 이곳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며 노트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    

  하지만,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 찾아온다고 하던 가요?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S와 함께 정찰을 다녀오기 위해서 나온 도시는 절벽 아래에 바다가 가득 펼쳐진 곳이었습니다. 햇빛이 내리는 바다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진주가루를 가득 뿌린 듯 반짝이는 바다를 뒤로 하고 내려온 도시는 눈으로 무너진 건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들린 작은 사무실은 물건도 많이 없었기에 수색은 금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입고 있는 옷의 단추와 똑같은 걸 발견하고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해가 지고 있기에 서둘러 머물 곳을 찾아 움직여야 했습니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향하며 S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길에는 위험한 것도 없었거든요.

 

 다만, 도시가 너무나 익숙하게 눈에 들어온 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문한 적도 없는 도시가 눈에 익숙하다는 것, 그리고 더 익숙하게 길을 찾아가는 S를 보며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에 도착하여, 둘로 나뉘어 한사람은 1층으로 한사람은 2층으로 나뉘어 찾기로 했습니다.

 싸늘한 1층 로비를 지나쳐 책이 가득한 1도서관이라고 적힌 팻말을 지났습니다. 

 가장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자 보이는 작은 공간에 책상으로 다가갔습니다.

 조사하던 중 분실물 보관함이라고 판이 붙은 서랍이 보였습니다. 잡아당기자 덜컹거리는 잠긴 서랍에 열쇠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습니다. 책상 위 화분 아래에 작게 빠져나온 열쇠가 보였습니다. 마치 발견을 해달라는 듯 배치되어 있던 열쇠를 집고 홀린 듯 잠겨져 있던 서랍을 열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판도라가 되어 상자를 연 줄 모르고, 그 안에 잠자고 있는 게 절망을 깨운 지도 모르고….

 

 서랍을 열자 접힌 쪽지 하나와 그 아래 가득 쌓인 지도가 보였습니다.

 

 내가 아닌 내가 아닌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내 손 끝을 끌고 쪽지를 잡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초조함과 긴장감에 떨리는 손으로 쪽지는 펼치자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과 글씨체. 다급하게 눌러쓴 글은 끝마저 길게 늘어졌습니다.

 

 [그 무엇도, 이 세계를 믿지 마.]

 

 누구도 믿지 말라고, 이 세계를 믿지 말라는 쪽지에 아득한 정신을 잡았습니다.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도시에 있던 내내 느껴지던 위화감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이내 서랍을 꺼내 뒤집어 엎었습니다. 큰 소리와 함께 지도들이 쏟아지고, 모두 같은 재질에, 같은 펜으로 그린 듯한 지도. 바닥을 가득 채운 지도를 하나씩 펼쳤습니다.

 

 한 장, 두 장… 열 장, 스무 장, 서른 장… 무수한 지도들은 서랍 안에 엉망으로 쌓여 구겨지고 번져 있었습니다. 

 

 어떤 지도의 뒷면에는 S와 이 도시를 다녔던 일을 일기처럼, 다른 지도에는 도망치라는 커다란 글자만이, X자가 가득 쳐진 지도, 수백개의 선이 그려진 지도… 그리고 S의 이름이 크게 적힌 지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의 마지막 장소는 모두 이 도시였습니다.

 

 이 노트를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제는 예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S가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모르더라도 괜찮습니다.

그와 나는 내기를 했으니까요.

 

 어떤 힘으로 이 세계를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몇 번째일지는 모르지만, 또다른 내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설명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반복하는 이유와 끝낼 수 방법을 그리고 더이상 이 세계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노트를 남깁니다. 지금 노트를 적고 있는 시간은 이 시간선의 ‘영하해’에게 준 그의 마지막 배려입니다.

 그는 이후에 도서관에서 어떤 것도 건들지 않겠다고 했고, 시간선이 반복하더라도 그 도서관만은 시간을 고정시켜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노트를 찾을 수 있게 도서관에 여기저기에 많은 것을 두었습니다.

 어떤 것을 찾아서 이곳까지 올 지 모르겠지만, 잘 도착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혼란스럽고 복잡하겠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습니다.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

 

  

 툭, 노트의 가장 마지막 장에서 떨어진 지도를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하해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뭐지? 초조하게 꽉 쥐어진 노트가 와락 구겨짐에도 손을 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머리에 하해는 눈을 감았다. 질척이는 진실에 견디지 못한 머리가 덜그럭 흔들리며, 숨이 치올랐다.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며 기다리자 저물어 가는 노을이 몸으로 가득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지만 느껴지는 햇살에 진정하고 있을 때, 문득 발끝부터 조금씩 좀 먹어 들어오는 그림자와 차가움에 하해는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번쩍 떠진 눈으로 어두워진 실내가 보이고,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을 시간이 것만 저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에 하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발끝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끝에서, 끝으로. 

 

 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어둠이 올라오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계단을 하나씩 삼키듯 그림자로 덮고, 하해의 몸을 덮으며, 올라오는 그림자가 완전히 하해를 덮었을 때 그 끝에는 익숙한 이가 나타났다.

 

 시원하게 올라간 입매, 걸음걸이에 맞춰 가볍게 흔들리는 녹색이 섞인 푸른빛의 긴 머리카락 끝, 곱게 휜 눈꼬리와 단정한 발걸음에 맞춰 울리는 발걸음 소리까지.

수선은 느긋하게 계단을 올라와 얼굴을 덮고 있던 넥워머를 내렸다. 이내 하해의 손에 들린 노트를 보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내가 방심했네. 1층의 직접적인 단서만 없애면 될 거 같았는데, 2층에 이런 방법을 써 놓았을 줄은 몰랐군. 역시, 그대야.”

 

 늘 재미있는 방식을 쓰는 군. 흥미로운 듯 노트를 보던 수선은 턱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고 하해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씩 움직일 때마다 웅크린 짐승처럼 그림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꿈틀거렸다.

 

 “기억은 모두 돌아왔나, 그대? 아니면 노트를 보고 예상만 어떤 거든 괜찮지. 어찌됐든 내기의 내용은 그대가 이겼으니까.”

 

 무엇부터 가르쳐주면 좋을까, 그대? 무엇이 제일 궁금한가?  하해의 반응에도 수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웃으며 양 손의 손끝을 맞댔다. 무엇이든 알려주겠다는 듯 양 손끝을 문지르며 말하던 수선은 이내 생각나듯 워커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생각보다 시간은 많으니 앉아서 이야기 하는게 어떤 가? 여긴 이제 고정된 시간이라 얼마든지 이야기해도 괜찮으니 말이네.”

 

가볍게 두드린 바닥 위로 의자와 테이블이 공중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중력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지 천천히 떨어져 소리 없이 바닥에 내려진 테이블 위에는 가득한 음식과 따뜻한 음료를 컵에 따르며 수선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하해를 향해 양 손을 순종적으로 내밀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거네. 여기선 나도 그대와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어.”

 

괜찮으니까, 어서. 길게 늘어뜨린 눈꼬리와 순하게 미소를 지은 익숙한 표정을 보며 하해는 주먹을 꽉 쥐었다.  

 평소 대답하지 못할 때 말이나 주제를 회피하기 위해 짓고 하던 수선의 표정이었다.

 하해는 맞은편 의자를 잡고 당겼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겨져 나온 의자가 매끄러운 타일 바닥과 맞물려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 앉자 제 앞으로 내밀어진 컵을 보던 하해는 조심히 두 손으로 받았다. 천천히 올라오는 향기는 익숙하고 그리운 향기였다. 금방 내린 듯 향긋하게 올라오는 커피의 향기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며 하해는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삼켰다.

  따뜻한 기운이 몸에서 퍼져 나가고, 추위와 긴장에 움츠렸던 몸이 풀리자 하해는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수선의 모습에 손 끝에서 손에 전체적으로 퍼지는 온기와 다르게 또다른 이유로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럼, 이제 더이상 돌아 갈 일은 없는 거야?”

 

“마지막으로 한 번 돌릴 거네. 그대가 나를 만나기 전으로 말이네.”

 

 자신의 말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을 하해를 보며 수선은 덧붙여 설명할 말을 골랐다. 조금 긴데, 들어주겠어? 동의를 구하는 말에 하해가 끄덕이자 수선은 제 앞에 있던 컵을 들고 목을 축였다. 긴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듯 수선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내가 죽은 것은 21살이었네. 이 눈보라 속에서 1년쯤 버텼을 때였나? 내 마지막은 이 도시였네. 추위와 허기에 끝에 이 도서관에서 죽었네.”

 

 잡히지 않는 시간 위를 유영하듯 구름도 흐리지 않는 창밖의 하늘을 눈에 담던 수선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하해를 바라봤다. 그 뒤에는 계속 삶을 반복했네.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던 깨어나면 이 도서관이었네.

 

“몇 번 발버둥을 쳤는데 계속 도서관에서 눈을 뜨니 기다렸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의식이 흐려질 때 이게 내 눈앞에 나타났네.”

 

 그 말을 이어 수선은 계속 해서 상황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홀로그램창이 테이블 위로 떠올랐다. 홀로그램 지도 위로 표시된 지역은 한정적이었고, 익숙한 지형들에 하해는 숨을 삼켰다. 

 

“처음엔 이거보다 더 넓었는데, 관리하기 어려워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필요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지워버렸네.”

 

 처음 여정을 시작했던 하해의 집 근처부터 지금 도착한 도시의 바다까지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던 수선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허공에 흔들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지도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무엇을 위해 이걸 내게 준 것인지는 알지 못하네. 그저 이 능력이 생기고 난 후부터는 배고프지도, 졸리지도 않게 되었네. 왠만한 부상도 순식간에 낫고.  게다가 이 지도에 있는 도시를 흔적도 남지 않게 없애 버릴 수도 있고, 날씨도 바꿀 수 있게 되었네. 마치 신처럼 말이야.”

 

 시간을 돌릴 수도 있게 되다니 엄청나지 않은가. 대단하지 않냐는 듯 양손을 보여주며 수선은 하해에게 동의를 구하듯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호응에 수선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뒤에는 이 말도 안 되는 날씨가 되기 전으로 완전히 돌려보거나, 혹은 조정해서 완전히 멸망을 막아보거나…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더군. 인류가 멸망을 향해 가는 건 막을 수 없고, 멸망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도 없으니 그저 구경하며 마지막 순간에서 시작까지 계속 돌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료하기 그지없지. 입매를 굳힌 지루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하던 수선은 이내 하해와 완전히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대를 본 거네.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누군가를 구했지. 세상이 반복되고 환경이 변했음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래서 개입하기로 했네.”

 

 그대가 궁금했거든.

끝내 이어진 마지막 말을 끝으로 수선은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는 듯 긴 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였다. 자신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라는 듯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도 좋다고 덧붙인 수선은 컵 안에서 남은 마지막 한모금을 보다 소리 없이 잔을 테이블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하해의 질문에 수선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무언가부터 사소한 물음까지 모두 대답해주던 수선은 마지막 질문을 듣고 테이블 위 올려 두었던 잔을 들었다.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대를 보면서 이 세계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게 조정하는 일 뿐이네. 이 세계가 완전히 멈추지 않게 시간을 돌리고, 자원을 배치하고… 하지만, 그대와 일행들도 모두 노력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반복일 뿐이지.”

 

 수선의 말을 끝으로 어느새 창 밖의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깨닫고 하해는 눈을 깜박였다. 추운 겨울의 기운이 손 끝이 오고, 별이 보이기 시작한 바깥의 하늘을 보며 하해는 마지막으로 수선과 눈을 마주쳤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수선아?”

 

 그 말에 잔을 입가에 가져간 수선은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이내 웃음을 흘리며 편안히 무릎 위에 팔을 놓았다. 물론이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또다른 나 역시 그곳에 있을 것이네. 그래도 괜찮다면 찾아주게.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을 것이네.”

 

 바다가 잘 보이는 곳. 천천히 생각하던 하해는 서서히 쏟아지는 나른한 졸음에 눈을 깜박였다. 이제 돌아가야지.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끝났을 거네. 흐려지는 정신의 끝에 마지막으로 상냥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라지는 하해의 손 끝을 바라보며 수선은 밖을 보았다. 완전히 해가 진 밖은 오로라가 떠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오로라로 희미하게 빛이 드는 도서관 안을 바라보며 수선은 마지막으로 남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바스락-.

 

 남은 손에서 나타난 쪽지는 곱게 접혀 있었다. 하해가 미처 줍지 못했던 쪽지를 발견해서 주웠던 것은 충동적이었다. 자신에게 전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이정도는 봐주리라 믿으며 수선은 제 작은 움직임에도 구겨질까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쳤다. 익숙한 필체, 하지만 신중하게 적은 듯 하나씩 이어지는 단어들.

 수선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창밖을 보다 다시금 쪽지를 보며 입술을 물었다.

 

「 돌아올 게, 기다려줘.」

 

“그럼, 그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네.”

 

 나에게 남는 것은 시간이니까.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도서관을 비추는 것을 보며 수선은 쪽지를 제 옷의 안쪽 주머니로 접어 넣었다. 아마, 이제 괜찮을 것이다. 묘한 확신을 느끼며 수선은 새롭게 다가오는 아침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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